[르포]월 700만원에 인센티브 준다는 '부동산' 취업 설명 들으러 가봤다

기획부동산 다단계 취업 사기 주의보
파격적인 근무조건 월급·인센티브 강조
큰돈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선 안 돼
  • 윤혜경 기자
  • 입력 2021-04-16 10: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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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한 전봇대에 붙어있는 부동산 직원모집 전단. /윤혜경기자hyegyung@biz-m.kr

'부동산 배우면서 돈 버세요. 초보, 주부 누구나 가능. 고소득 및 투잡 원하시는 분'

회사 근처 전봇대에 붙어있던 부동산 직원모집 전단지 내용 중 일부다. 누군가가 방금 붙인 것인지 빛이 바랜 전단지들 사이에서 유독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봤다. 직무 관련 경험 등 채용시장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취업 스펙'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배우면서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 전부였다.

근무조건은 몹시 파격적이었다. 오후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에 4시간만 일하지만 급여는 150만원에 플러스 알파. 주말을 제외하고 한 달에 20일 출근한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 4시간 일하고 최소 7만5천원을 벌어가는 셈이다.

이 같은 채용이 많은지 궁금해 아르바이트 채용 플랫폼에 '부동산'을 검색해봤다. 무려 945건이 나왔다. 검색옵션을 이용해 지역을 수원시로 좁혀보니 총 32건으로 추려졌다.

채용 게시물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배우면서 일하고 근무시간은 짧았다. 월급은 150만~700만원으로 편차가 컸고, 대부분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표기하고 있었다.

월급을 많이 준다는 업체 몇 곳에 전화를 해봤다. 이들은 기자에게 이름과 나이, 사는 곳을 물어본 뒤 자신들은 주로 '토지'를 거래하고 있으며 직원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설명했다. 하루에 1천만원 넘게 벌 수도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얼굴을 보고 말하자고 회사 방문을 유도했다. 그렇게 부동산 몇 곳과 약속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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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플랫폼에 올라온 부동산 관련 채용 공고. /채용 사이트 캡처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간판이 없었다. 건물의 상층부에 영업장이 있었는데, 통화한 A팀장의 설명이 없었다면 찾지 못했을 정도였다.

어렵게 방문한 부동산 내부는 흔히 접했던 1층 부동산과 느낌이 달랐다. 언뜻 보이는 이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있었다. 안내가 주 업무로 보이는 직원에게 이름을 말하자 그는 "면접 보러 오셨다"고 누군가에게 전달했고, 통화한 적 없는 임원이 "방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방에 들어가니 수원시가 아닌 검단신도시, 세종시 등 특정 지역 지도가 걸려있었다. 지도 옆에는 교통 호재 등 뉴스 보도 캡처본이 붙어있었다. 잠시 후 A팀장이 들어오자 타 지역 지도가 가득한 방에서 예기치 못한 면접이 시작됐다. 직책이 본부장이라 밝힌 B씨는 이름과 나이, 거주지, 졸업 대학, 공인중개사 자격증 여부를 물었다. 자격증이 꼭 필요하냐고 묻자 "자격증 없어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돈만 있으면 자격증 있는 사람을 사면 된다"고도 했다.

이들은 땅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LH 사태로 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있는 사람들은 땅에다 투자한다"며 "상가나 아파트는 노후되지만 땅은 그렇지 않다. 땅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무는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미리 매입한 토지를 지인 등 고객에게 분양홍보한 뒤 회사로 데려오면 된다. 이후 계약 등 자세한 설명은 팀장 또는 임원이 맡는다. A팀장은 "내가 이렇게 좋은 물건이 있다고 지인들한테 소개를 하면 된다"며 "아침마다 회사에서 토지에 대해 교육을 해준다. 땅은 서류상 문제가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객이 땅을 사고 잔금을 치르면 돈을 지급한다. 하루에 1천만원 이상 받는 사람도 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도 비슷했다. 안내 직원이 있었고, 모두 복장이 단정했다. 이름을 말하니 직원의 안내에 따라 특정 지역의 지도가 가득한 곳에서 또다시 예기치 못한 면접이 진행됐다.

이곳에서 만난 B팀장은 "회사에서 교육한 내용을 바탕으로 회사 소유의 쪼갠 토지를 분양하면 되며, 한 달에 기본급으로만 700만원 이상 가져가는 직원들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직원은 회사 땅을 고객보다 저렴하게 살 기회가 제공된다"며 "회사 땅은 맹지가 아니며 본인들은 '기획부동산'이 아닌 법인부동산"이라고 설명했다.

방문한 부동산의 내용들을 정리하면, 회사에서 교육받은 대로 주변 지인에게 '알짜배기'인 회사 땅을 소개, 분양하는 게 주 업무다. 자격증이 없어도 회사에서 아침마다 분양하는 토지에 대한 교육을 하기 때문에 전문가처럼 땅을 소개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영업으로, 땅을 판만큼 돈을 벌어가는 구조다. 본인들이 땅을 살 때는 고객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기획부동산의 수법으로 알려진 것과 상당 흡사하다.


기획부동산은 개발 및 교통호재를 미끼로 개발 가능성이 낮은 땅의 지분을 여러개로 쪼갠 뒤 비싸게 팔아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법인을 변경하거나 폐업하는 방식으로 운용해 피해자를 양산하며, 이들이 판매한 토지는 자산가치가 낮고 공유자가 많아 매각이 쉽지 않다.

경기도에 따르면 개발이 어려운 토지나 임야를 싸게 산 뒤 개발 및 교통호재가 있는 것처럼 속여 비싸게 되파는 기획부동산에 의한 경기도민의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부터 '기획부동산 불법행위(피해) 신고센터'에 접수된 제보만 52건에 달한다.

기자가 면접에서 들은 업무설명과 비슷한 사례도 있다. 평택시민인 B씨는 자신이 일하던 기획부동산 법인으로부터 영업실적을 강요받아 회사에게 들은 호재를 바탕으로 토지를 취득한 후 지인들에게 좋은 땅이라고 투자를 권유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가 회사로 얻은 정보는 모두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고, 설상가상으로 일하던 기획부동산이 폐업하면서 재산과 지인들의 신뢰를 모두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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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공사가 매각해 논란이 되고 있는 맹지. 2020.11.03. /김금보기자 artomate@biz-m.kr

기획부동산에서 일했다가 자격증을 딴 후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다는 한 중개사는 "진짜 좋은 땅은 일반인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극히 드물다"며 "좋은 땅이면 본인들이 가지고 있지 주변에 왜 팔겠느냐"고 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기획부동산이 사원을 모집하는 특징은 '한 건만 해도 큰 돈을 벌 수 있다', '본인이 투자하는 게 우선이다', '친인척 등 주변 인프라를 이용하면 된다'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업무를 하는 게 아니라 투자를 권유하며, 투자하면 큰 수익을 얻는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기획부동산으로 보면 된다. 취업준비생 등 구직자들은 이런 말을 유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윤혜경기자 hyegyung@biz-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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