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담보 부족 소상공인 취약층 해법 제시
상환 이력 넘어 미래소득·재기 여부 살펴야
위험 없애기보다 정확히 나눠서 관리 조언
■ 포용금융┃김용기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640쪽, 3만3천원
금융(金融)은 금전을 융통하는 일을 말한다. 특히 이자를 붙여서 자금을 대차하는 일과 그 수급 관계를 이르는 용어다. 쉽게 말하면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나중에 이자를 더해 돌려받는 일이 금융이다. 그렇다면 금융은 과연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닿아야 하는 것일까.
전작 ‘생산적 금융’에서 돈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는 금융이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닿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번 책은 전작에 이어 ‘한국 금융 혁신’의 방향을 담은 두 번째 제안이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몸담았다. 2020년 2월부터 2022년 5월까지의 재임 기간 중 일자리위원회 내 ‘일자리금융 TF’를 설치해 ‘생산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지역금융 활성화 방안’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금융 전문가다.
런던정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과 아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를 지냈다. 현재 연구단체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로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적절한 금융을 이용하기 힘든 처지에 놓인 신용 이력이 짧은 청년, 담보가 부족한 소상공인 등 금융 취약계층을 찾기 어렵지 않다. 저자의 핵심 제안 가운데 하나는 ‘포용금융’과 취약 계층을 위한 ‘착한 금융’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금융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때 과연 과거에 돈을 잘 갚았는지만 보고 판단하는 것으로 충분한지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한 ‘신용점수’가 아니라 앞으로 벌 돈이 있는지,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하고 또 돈을 빌려준 뒤에도 잘 갚을 수 있도록 돕는 방법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 취약계층이 다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회복의 사다리’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영국 금융 선진국은 물론, 케냐, 방글라데시, 인도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배울 것이 많이 있다.
포용금융을 제도화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포용금융은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라며 “위험을 더 정확하게 구분하고, 일부는 낮추고, 일부는 나누고, 일부는 사후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장은 추천사에서 “김용기 박사는 한국 금융의 문제를 그 누구보다 깊이 분석해 온 최고의 전문가”라며 “이 책은 금융이 배제의 장치가 아니라 회복과 성장의 사다리가 되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보여준다”고 글을 남겼다.
2026-08-20
남양주 비스타밸리 ‘香器_사이공간 사이존재’
흙 만지고 그릇 빚으며… ‘비움과 채움’ 경험
남양주시 수동면의 푸른 자연 속에 자리 잡은 비스타밸리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흙과 향기를 통해 사람, 자연, 예술의 연결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조은미 작가의 개인전 ‘香器_사이공간 사이존재’다.
이번 전시의 관심 포인트는 흙으로 빚은 사유의 공간이다. ‘흙으로 빚은 공간 나를 만나다’라는 메시지처럼 익숙한 도예의 틀을 깨고 관람객이 직접 흙을 만지고 작품을 경험하며 사유와 소통을 이어가도록 기획됐다. 향과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해 단순한 시각적 감상을 넘어 공감각적인 힐링을 선사한다.
특히 수려한 숲과 어우러진 전시장에서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사람과 사람, 자연과 예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16일 전시장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손이 먼저 보였다. 바닥 위에 놓인 흙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과 관람객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흙을 장난감처럼 만지며 웃었고, 누군가는 아주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누르며 작은 형태를 만들어 갔다. 흙은 비워낸 뒤의 잔해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시 무언가를 담기 위한 그릇의 시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흙을 마주한 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어느 순간 모두의 시선은 손끝에 머물렀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며 자연스럽게 몰입했고, 어른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자신의 손으로 흙을 눌러 봤다. 전시장에는 설명보다 감각이 먼저 흐르고 있었다.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흙을 통해 각자의 시간을 조용히 돌아보는 공간이었다.
조 작가의 전시 ‘香器_사이공간 사이존재’는 12일부터 9월9일까지 비스타밸리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며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무다.
이번 전시는 흙과 질그릇, 향을 매개로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시장에 놓인 질그릇은 비어 있지만 허전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담기 위해 기다리는 여백처럼 느껴졌다. 그릇의 안쪽은 말해지지 않은 마음이 머무는 자리처럼 보였고, 바깥쪽은 손과 공기와 시간이 지나간 흔적을 품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흙을 만지고 그릇을 빚으며, 비움과 채움이 멀리 떨어진 말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 안에서 맞닿아 있음을 경험했다.
현장에서는 전시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인천에서 온 20대 관람객들은 조 작가에게 “좋은 전시를 접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넨 뒤 “당 섭취를 하라”며 캔디를 선물하기도 했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전시장은 작품을 바라보는 공간을 넘어 마음을 나누는 장소가 됐다.
전시장 밖에서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말교감 체험과 승마, 피클볼, 영화, 체험형 레지던시, 숲속 체험 등이 마련됐으며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한식 레스토랑 도 운영돼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전시와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겼다.
이번 ‘香器_사이공간 사이존재’는 거창한 설명보다 손끝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흙을 만지는 아이들의 표정, 조용히 그릇을 빚는 관람객의 손, 비어 있지만 향과 기억을 품은 질그릇은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나의 그릇에는 무엇을 담고 싶은가?’
2026-08-17
8월 20일부터 9월 27일까지 기획전시실
이형상·윤동규 등 대표 학자·사상가 재조명
성균관대 소장 ‘근묵’ 등 국가지정 보물 13점,
정우량 영의정 초상화 최초 공개
1883년 개항 이전의 ‘인천’은 과연 한가로운 어촌 마을에 불과했을까. ‘개항 도시’라는 면모에 가려져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아온 인천의 지성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기획전시가 마련됐다.
바로 오는 20일부터 9월 27일까지 인천시립박물관이 진행하는 기획특별전 ‘조선을 밝힌 인천의 지성들’ 전시 얘기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인천에 연고를 두고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친 학자, 문인, 사상가들을 재조명한다. 인천은 개항 도시였을 뿐 아니라 높은 학문과 문화적 전통이 이어진 지식의 터전이기도 했음을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 중기부터 후기까지 중앙 정계에 진출하고 높은 학문적 성과를 이룬 인물 10여명이 소개된다.
전시 도입부에서는 영의정을 지낸 조선의 4대 문장가 중 한 명으로 검단 지역에 자리를 잡았던 상촌 신흠(1566~1628)과 가좌동 청송 심씨 가문의 기틀을 연 남애 심집(1569~1644)을 다룬다.
본전시는 크게 1·2부로 구성된다. 1부는 인천에서 밖으로 향한 인물을. 2부는 외부에서 인천으로 향한 인물을 들여다본다. 1부는 인천에서 태어나거나 인연을 기반으로 정계에 진출해 정승 반열에 오른 인물을 소개한다. 방대한 저술을 남긴 병와 이형상(1653~1733)을 비롯해 김재로(1682~1759)·김치인(1715~1790)부자와 정우량(1692~1756)·정휘량(1715~ 1783)형제 등을 조명한다. 전시 2부는 인천으로 들어와 학문적 성취를 이룬 인물을 살핀다. 대표적인 것이 강화학파다. 인천 지금의 남동구 도림동에 정착해 성호 이익의 수제자로 인천에 실학을 뿌리를 내린 소남 윤동규(1695~1773)와 강화학파를 대표하는 하곡 정제두(1649~1736), 이광사(1705~1777), 이시원(1790~1866), 이건창(1852~1898) 등을 집중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인천시립박물관 개관 이래 단일 전시로는 가장 많은 13점의 국가지정 ‘보물’이 한자리에 모인다. 위창 오세창이 수집한 서첩으로 김재로·김치인·정우량·이광사·정재두 등의 친필 간찰이 수록된 성균관대 소장 ‘근묵’ 7책을 비롯해, 병와 이형상의 문집 중 보물로 지정된 ‘악학습령’ ‘악학편고’ ‘남환박물’ ‘동이산량’ 6점이 전시된다.
또한 연수구 청량산 세거 가문 영일 정씨 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정우량의 초상화가 문중 소장품으로 보관되어 오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된다. 이외에도 이형상이 생전에 사용했던 거문고, 옥피리와 소남 윤동규의 안경, 호패, 제사상 세트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희귀 유물이 함께 전시된다.
전시 연계 행사로 다음 달 11일 오후 1시 박물관에서 ‘필불휴(筆不休), 병와 이형상의 광활한 학문세계’ 학술회의도 열린다.
우석훈 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는 “142종 326책의 저작을 남기며 평생 붓을 놓지 않으며 스스로를 ‘필불휴’라 여긴 이형상 선생이나 성호학파의 거두 윤동규 선생처럼 인천이 배출하고 품은 지식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시”라며 “희귀 유물을 직접 확인해 인천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하고 자부심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6-08-17
팔레트 나이프로 ‘임파스토 기법’ 작업
전시 작품들 ‘여성성’ 거대한 뿌리 탐구
개관전, 스페인 아르마 갤러리와 협업
현대 구성회화에서 주목받고 있는 엘레나 구알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스페이스 제연Ⅹ아르마갤러리 엘레나 구알 프리뷰전’이 고양 스페이스 제연에서 열린다.
엘레나 구알은 초기 유화 작업 중 겪은 알레르기 반응을 계기로 붓 대신 팔레트 나이프를 들었다. 작가는 물감을 특정 부분에 두텁게 올려 붓이나 팔레트 나이프의 자국을 남기며 질감과 입체감을 만드는 임파스토 기법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회화 언어로 구축했다. 붓의 부드러움 대신 선택한 두터운 질감은 작가의 작업을 단순한 평면적 초상에서 나아가 보이지 않는 인물의 감정과 영적인 깊이를 시각화하며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여성성’이라는 거대한 뿌리를 탐구한다. 작가가 캔버스 위에 형상화한 인물들은 명확한 서사나 일화적인 배경을 거부한다. 단지 화면 속에서 응시하고, 침묵하고, 존재한다. 그래서 무게감 있고, 깊은 힘을 지니고 있다.
작가에게 얼굴과 신체는 정체성이 구축되는 문화, 감정, 경험이 차곡히 쌓인 지층과도 같다. 팔레트 나이프가 긁어내고 쌓아 올린 캔버스의 표면은 인간이 겪어온 취약함과 회복력, 드러내고 싶지만 끝내 속으로 간직해야 했던 복잡한 감정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엘레나 구알은 넘쳐나는 이미지와 소음으로 가득 찬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이지 않는 것과 영적인 것을 향한 창’으로 정의한다. 관람객은 그가 겹겹이 빚어낸 캔버스의 표면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인물들의 닫힌 눈꺼풀 너머에 숨겨진 내면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정적인 공간 속에서 스스로 존재를 되묻는 철학적 사유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스페이스 제연의 개관전으로, 스페인 아르마 갤러리와 긴밀한 협업을 통해 완성됐다. 아르마 갤러리 측은 “한국의 역동적인 현대 미술 시장과 예술적 교류를 희망해 왔으며, 이번 협업을 통해 한국 관람객들에게 엘레나 구알의 작품이 가진 묵직한 울림과 물질의 에너지를 선보일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전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이며, 사전 예약을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2026-08-16
전과자·집안의 수치였던 할아버지에 온가족 침묵
기자였던 저자, 추적 끝에 독립운동가란 사실 밝혀
할머니 함구 ‘생존방식’… 마거릿 “내 기원 이야기”
■ 비밀의 들판┃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408쪽. 2만2천원
최근 한 배우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증조부의 친일행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역풍은 거셌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고울 리 없었다. 배우는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나라는 존재를 거슬러 올라가 뿌리를 찾고, 그 역사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이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임을 거듭 생각하게 됐다. 그러던 가운데 ‘비밀의 들판’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 안에는 어쩌면 지극히도 개인적일 수 있는 한 집안의 빛바랜 사진들과 연표, 가계도 등이 담겨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회고’이자 ‘저자의 인생 20여년’이 걸쳐져 있는 책은 복잡했던 20세기 한국의 역사 속에서 한 가족이 겪었던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책의 저자는 1970년대 휴스턴 교외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일원이었던 마거릿 주혜 리이다. 그는 “넌 어디 출신이야”라는 물음에 “휴스턴”이라고 대답하면 “진짜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줄곧 들어왔다고 했다.
저자는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진정으로 내 집에 머무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자신 안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을 가졌고, 이러한 이유가 할아버지의 삶이 잊힌 사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됐다. 기자가 된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파헤쳐 보기로 마음먹는다.
전과자이자 집안의 수치, 가족들은 할아버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아버지가 조사하기 시작했고, 마거릿이 이를 이어받았다. 그제야 할머니는 긴 침묵을 깨고 마거릿의 인터뷰에 응했다.
추적 끝에 마거릿은 할아버지인 이철하가 일제강점기 충남 공주 최초 항일 동맹휴학을 이끌고 수차례 항일 시위를 조직한 학생 운동가이자 공산주의 혁명에 뿌리를 둔 독립운동가였단 사실을 밝혀낸다. 또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해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투옥됐고, 빨치산 활동을 주도한 이현상의 동지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유해는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졌다.
“그 괴로운 일을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겠소?”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듯, 할머니 역시 그러했다. 할머니에겐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래서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앴다. 누군가에 털어놓지 않고 삼키며, 상처가 곪아 터져 언젠가 사라지기를 기대했던 생존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삶과 가족의 이야기가 역사 속에서 침묵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기억을 삼키고 애도되지 못한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이자 여전히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유산이다. 지난 과거를 더듬어보며 내가 누구인지를 떠올리고 똑바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책은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내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이고 “세상에서 잊힌 채 선조들의 고향에 영원히 묻혀버린 삶들을 되찾아오는 이야기”였다.
2026-08-13
국악의 세계적 인기 요인 경험 토대 기록 “성공, 우연 아닌 축적”
■ K-컬처의 원류, 우리가 잘 몰랐던 국악 이야기┃서광일 지음. 더로드 펴냄. 356쪽. 3만2천원
국악 대중화에 앞장서온 한 국악인이 ‘K-컬처’가 전세계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성공할 수 있었던 근원적 요인을 국악으로 제시하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나하나 증거를 제시한다.
국악인 서광일의 대표 직함은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대표’다. 그는 인천지역에서 노동운동, 문화운동에 몸담은 이후 1992년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을 창단하고 부평풍물대축제 등을 이끌며 풍물과 국악 대중화에 앞장서 온 문화예술인이다. 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노력했다. 자체적으로 국악 전용극장을 운영하고 예술분야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며, 인천아리랑 연구 등 꾸준한 배움을 이어오는 등의 새로운 시도로 국악의 자생력, 국악의 가치를 높이는 데 힘써왔다.
책 ‘K-컬처의 원류, 우리가 잘 몰랐던 국악 이야기’는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30년 넘게 전통연희 현장에서 활동하며 이 질문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장면을 목격했다. 언어는 달라도 사람들은 장단에 맞춰 손뼉을 치고 몸을 움직였다. 가사를 몰라도 감정은 전달됐다. 그는 그때마다 확신했다. K-컬처의 힘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땅의 소리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그는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창단 이후 30여 나라 50여 도시에 초청되어 공연을 이어왔다. 에스토니아, 프랑스, 미국, 멕시코, 브라질, 러시아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풍물을 연주했다. 그러면서 그가 확인한 것은 단 하나였다. 국악이 낯선 음악이 아니라, 세계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음악이라는 사실이었다.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게임, 문학 등 K-컬처는 다양한 장르로 소비되고 있다. 한국의 이러한 콘텐츠는 세계인의 일상이 됐다. 그는 이 모든 시작, 그 뿌리가 바로 국악이라고 강조한다.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 반복되는 리듬, 수용자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구조, 이야기로 확장되는 방식 모든 요소가 이미 국악 안에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저자 서광일은 “K-컬처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의 구조가 시대에 맞게 해석된 결과이며 국악은 그 출발점”이라면서 “이제 우리는 국악을 다시 보아야 한다. 과거의 음악이 아닌 미래를 만드는 플랫폼으로 국악을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26-08-13
한국·그리스 수교 65주년 기념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국제교류전
‘그리스, 바다가 빚은 위대한 문명’
그리스 국·공립박물관 348점 전시
고대 그리스 영웅 신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요즘 인기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리스의 해양문명사(史)를 압축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오는 11일부터 국립인천해양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될 11일부터 열리는 ‘그리스, 바다가 빚은 위대한 문명’ 전시 얘기입니다.
그리스와 우리나라는 닮은 구석이 참 많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수많은 섬을 품고 있으며, 바다를 터전 삼아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해양도시 인천에서 6천 년 동안 이어진 바다 건너 그리스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게 다가옵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그리스 수교 65주년을 기념해 그리스 문화부와 우리나라 해양수산부가 공동으로 개최합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그리스 특별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참여 기관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인천해양박물관과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손기정기념관 등 3곳이, 그리스에서는 고대아고라박물관, 낙소스고고학박물관 등 무려 15곳의 국·공립박물관이 뜻을 모았습니다.
전시되는 유물은 한국 소장품 6점과 그리스 소장품 342점을 합쳐 총 348점에 달합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의 보물급 유물들이 대거 건너왔는데요. 이해를 돕기 위해 돈으로 환산하면 유물 가액만 무려 1천182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 고미경 박물관 전시기획부장의 설명입니다.
정식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언론 매체를 위한 사전 공개 행사가 열렸습니다. 전누리 박물관 전시기획부 선임학예연구사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전시실을 둘러봤습니다.
우선 전시실 입구 지붕을 떠받치는 웅장한 기둥이 구조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 눈에 봐도 ‘그리스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이번 전시는 그리스 신전에서 모티브를 따와 전체 전시 공간을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전시실 내부로 들어서면 그리스 조각 예술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아르카익 시대를 대표하는 소년 조각상 ‘쿠로스(Kourous)’와 옷을 입은 여인인 ‘코레(Kore)’ 조각상이 눈길을 끕니다. 주로 신전에 봉헌되는 기념물로 제작된 조각상입니다.
이렇게 프롤로그를 지나면 키클라데스·미노아·미케네 문명의 대표 유물을 살펴보는 1부 ‘에개해, ’이동성‘과 그리스 세계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전시 2부 ‘바다를 건넌 신화’, 4부 ‘올림피아와 범그리스 성소’는 그리스 신화와 올림픽이 지닌 해양적 세계관을, 5부 ‘바다와 대륙을 넘어’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과 헬레니즘 세계의 해상 교역망을 조명합니다.
특히 3부 ‘전쟁과 민주주의’에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해군력과 해전을 깊이 있게 살핍니다. 특히 삼층으로 노가 달린 배인 삼단노선 트라이림(Trireme) 모형과 이 트라이림의 뱃머리에 장착된 청동 충각(ram)의 실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전역을 통틀어 실제 전시가 가능한 상태의 충각은 단 두 점뿐이라고 합니다. 그 귀한 두 점이 이곳에 모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스 고고학 위원회는 반출을 만류했지만,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이번 한국 전시가 성사됐다고 합니다. 또 국가 의전용 삼단노선으로 추정되는 배가 새겨진 비석 일부인 ‘렌토르망(Lenorman)’ 봉헌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유물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유물은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봉헌된 ‘황금 은매화(꽃 이름) 화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라 금관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이 화려하고 섬세한 자태가 인상 깊었습니다.
전시 여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유물은 잠든 사랑의 신 에로스를 표현한 손바닥 만한 작은 조각입니다. 전누리 학예연구사는 “우리가 보통 사랑의 신으로 많이 알고 있는 에로스가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더 나은 미래와 더 밝은 세상, 그리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존재였다”고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이번 전시가 바다 건너 그리스의 유물을 인천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설레고, 흔치 않은 기회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시간을 내어 국립인천해양박물관에서 ‘그리스 문화 산책’에 나서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2026-08-10
예술적 실험 40년, 빛으로 조명하다
자연 공존 장소 특성 ‘미래 가능성’ 모색
미술관 안팎의 빛, 작품-관람객 연결
조각공원서 앉고·기대고·머무는 경험
알고리즘 시대 ‘시간 의미’ 성찰 유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1986년 개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함께 성장하며 수많은 예술적 실험과 창조의 순간을 품었다. 특히 미술관을 둘러싼 자연이 건축물과 어우러지며 예술로 공존하는 장소적 특성을 가진 과천관은 올해 개관 40주년을 맞아 그 시간과 공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 ‘MMCA 과천 40주년: 빛의 상상들’을 진행한다.
전시의 부제인 ‘빛의 상상들’은 미술관 안팎의 빛으로 공간과 작품, 관람객을 이어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건축과 자연환경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소장품과 관람객 사이에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빛이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관이 공간과 신체, 기억과 경험이 서로를 비추고 반응하는 관계의 장이 되길 제안한다.
전시는 ‘광경’, ‘잔상’, ‘머무는 자리’ 등 3개로 구성된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서 볼 수 있는 필립 파레노의 대표작 ‘마퀴’는 소장 후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전구의 불빛이 랜덤으로 깜빡이는데, 관람객이 마주한 상황이나 감정, 기분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중앙에 위치한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맞이하러 가는 길이면서 메인전시실로 향하는 길목을 비추는 작품은 새로운 공간이 시작된다는 설렘으로 환기된다.
미술관 3층 브릿지 공간에는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가 설치돼 있다. 이 작품은 가상의 도시를 횡단하는 두 인물의 여정을 통해 속도와 시간, 과거와 미래,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복합적 시공간을 상상하고, 기술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 속 시간의 의미를 새롭게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브릿지 뒤로 크게 펼쳐져 있는 창과 그 너머의 자연이 어우러지도록 설치됐으며, 미술관의 어느 층에서도 볼 수 있다. LED 패널을 기반으로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을 보다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2원형전시실에서는 제임스 터렐과 이반 나바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빛과 공간, 인간의 지각을 탐구해 온 제임스 터렐의 작품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 역시 소장 이후 처음 공개된다. 조용히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공간을 채운 빛이 서서히 다르게 바뀌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강렬한 빛 속에서 관람객들은 침묵과 명상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네온과 거울로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과 시각적 착시를 구현하는 이반 나바로의 작품 ‘에코(벽돌)’와 ‘무제(쌍둥이빌딩)’도 만나볼 수 있다. ‘에코’는 끝없이 아래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우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안쪽에는 ‘ECCO’라는 단어가 배치돼 있다. 이는 작가의 언어와 정체성에 대한 경험을 나타낸다. 공간의 무한함으로 공포와 불안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신기하면서도 아름답다. ‘무제’는 바닥 아래가 끝없이 꺼지는 듯한 공간감을 펼친다. 9·11 테러로 사라진 쌍둥이 빌딩을 떠올리게 하며 사라진 대상에 대한 추모의 감정과 심리적 공백 등을 빛으로 구현해 냈다.
미술관 바깥의 조각공원에는 김하늘·방효빈·임정주·하지훈·황형신 등 작가 5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관람객들이 직접 앉고, 기대고, 머무를 수 있는 조각들로 이뤄져 있으며 관람객의 참여를 통한 작품과 신체의 연결을 경험하도록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이번 전시로 자연과 예술, 빛과 공간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풍경을 경험하고, 과천관이 지닌 장소성과 시간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6-08-10
직접 읽어본후 입고… 만족도 높아
연령 상한 없으니 어른에게도 추천
“좋은 책 만날수 있는 공간 꾸밀 것”
아이와 함께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결심을 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경단녀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생각을 하던 중 책방이 눈에 들어왔다. 무해하면서도 아이와 함께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고민을 거듭하던 이혜미 대표는 ‘망할 때 망하더라도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광주시 역동에 책방 문을 열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아 ‘근근넝넝’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을 이 대표는 그림책과 더불어 보냈다. 현재는 책방에 있는 4천권 가량의 책 중 그림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정도 된다. 이 대표는 “사실 육아하면서 책 읽는 게 쉽지 않은데, 책방에 읽지도 않은 책을 갖다만 놓고 파는 건 이상했다”며 “읽어보고 팔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림책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림책을 알면 알수록 어른이 읽어도 이렇게 좋은 책이구나라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됐다. 그림책으로 책방을 열길 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수상작, 추천책, 신간, 베스트 셀러 등을 위주로 책을 수집했다. 나만의 기준이 없었기에 무슨 책이든 다 가져다 놔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 놓은 책을 읽어보면 마음에 드는 책이 있는 반면 와닿지 않는 책들도 있었다. 팔리지 않고 쌓여가는 책들을 보며 이 대표는 직접 추천할 수 없는 책들은 들여 놓지 않기로 했다. 그는 “책방에 들어오는 책들은 다 읽어보니까 자연스럽게 마음에 드는 것 위주로 선택하게 됐다. 저의 취향에 맞는 책들이지만, 책방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실패율이 상당히 줄었다”고 웃었다.
그림책은 보통의 책 한 권을 완독하는 것보다 비교적 쉽게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짧고 함축적인 글 가운데 무의식을 찌르는 부분들도 갖고 있다. 마음을 계속해서 두드리는 책, 이 대표에게 그림책은 글과 그림으로 자신을 울고 웃게 하며 ‘나를 일깨워 주는’ 매력을 가진 존재였다.
그래서 이 대표는 그림책을 읽는 데에는 연령의 상한이 없다고 강조했다. 즉,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책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도움이 되고, 그렇게 세대 간의 간극을 줄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면서 “이곳에 오면 좋은 그림책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책이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림책방 근근넝넝이 추천하는 책]
이해·존중 가지고 살자며
세상에 손 내미는 아이들
■ 우리가 책을 펼치면 ┃이금이 지음. 노란상상 펴냄. 44쪽
“이해, 존중, 배려, 평등, 평화, 사랑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어린이 책에서는 그런 세상에서 함께 살자고 손 내미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왜 어린이 책을 읽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그림책 ‘우리가 책을 펼치면’은 어린이 책을 읽고, 쓰고, 그리는 마음을 담았다. 어린이 책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이금이 작가는 어린이와 책 사이를 연결하는 지점들을 묶어내며 그것이 가진 다양한 가치에 대해 따듯하게 전한다. 여기에 국내외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며 활약 중인 그림책 작가 박현민·오승민·이소영·이명애·서현의 그림이 더해져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2026-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