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예술회관 대전시실 초대전 ‘제4의 벽’
지난 9일부터 인천문화예술회관 대전시실에서는 박신양 작가 초대전 ‘제4의 벽’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박신양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뷰 기사에 담지 못한 질문과 답변을 소개합니다.
- 인천 관객과의 만남을 갖고 있다. 어떤 기분인가.
“초대전을 통해 인천 관객과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준 인천문화예술회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인천과 인연이 깊지 않다. 월미도 ‘디스코팡팡’을 탔었고…(웃음), 1996년 드라마 ‘사과꽃 향기’ 촬영 시 가끔 오고는 했다.”
- 전시 제목이 ‘제4의 벽’이다. 연극적 개념일 텐데, 화가 박신양이 말하는 ‘제4의 벽’은 무엇인가
“‘제4의 벽’은 원래 약 200년 전 연극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배우와 관객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 관객이 준비된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장치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연극, 영화, 드라마 대부분이 이 원리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나 역시 배우로서 그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어떤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의심하지 않은 채 세상을 바라보곤 한다. 결국 제4의 벽은 하나의 연극적 장치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시선을 고정하는 하나의 사회적 구조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제4의 벽’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시선과 감동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고,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질문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예술은 그 질문을 시작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계기다.
- 그림을 그리는 창작자로 사는 것이 행복한가, 즐거운가
“행복은 안정이나 만족이 아니라,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아주 쉬운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오래 생각해야 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그림을 그리면서 여러 감정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행복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행복은 즐거움이나 안정된 상태라기보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끝까지 질문하고 실천하는 과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나에게 행복은 ‘표현할 수 있는 상태’다. 행복은 표현이 완성되는 순간이 아니라, ‘표현을 계속할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화가의 길은 분명 고독하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바로 그 질문과 불안, 그리고 떨림이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같다. 창작의 기쁨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행복이란, 왜 표현하는지를 끝까지 잃지 않은 채, 표현을 계속 만들어 가는 삶인 것 같다. 표현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배우를 했을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배우로 느끼는 ‘표현’과 화가의 ‘표현’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나는 운동성이 곧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연극도, 영화도, 그림도, 전시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나와 관람객들 모두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다. 나는 그 운동성과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와 화가의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서 생기는 것 같다. 배우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화가는 ‘왜 표현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림에는 대본도 없고 맡겨진 인물도 없다. 결국 화가는 자신의 존재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 왜 표현하려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는 일이다. 화가에게 표현은 곧 자기 자신을 해석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수없이 혼자인 시간과 마주하는 일이며,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감당하는 일이다. 나는 이것이 배우보다 화가에게 훨씬 무겁고, 어려울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관객이 화가에게 기대하는 것도 결국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화가는 자신의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것을 어떤 표현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그 답변에 해당하는 ‘표현’에 대해 관객들은 그것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림을 그리면서 배우 시절 보여주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나
“배우로 살아오면서 가장 오래 연구한 것은 감정이었다. 어떤 감정은 연기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고, 어떤 감정은 절제되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결론은 배우의 고유한 감정과 개별성이 작품 안에 적극적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연기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도 같은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연기와 그림은 장르는 다르지만 모두 ‘표현’이다. 그리고 표현은 표현하는 사람의 고유성과 개별성이 담길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더 근본적인 질문들이 생겼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의 표현을 보고 싶어 하는가, 표현은 무엇을 전달하는가, 고유성과 개별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나는 왜 표현하는가. 결국 제가 계속 붙들고 있는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감정은 나를 어디로 이끄는가’ ‘표현이란 무엇인가’이다.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 있다.
- 지난 14년동안 작품을 판매하지 않았다. 이번 초대전 ‘제4의벽’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내 표현의)가능성을 실험하고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지난 14년 동안 그림을 판매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본능의 표현이 무엇이며, 어떤 모습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내렸던 결론이며,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또한 그림을 소유의 대상으로 만들기보다, 전시를 통해 표현이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그것은 시장을 거부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그림을 통한 소통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4의 벽’ ‘에곤 실레, 예술가의 표현과 떨림’ ‘감정의 발견’등 3권의 책을 쓰고 수많은 ‘아트토크’를 이어오며 스스로 저의 그림과 그림행위에 대해 설명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을 제가 직접 말해야 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가려고 한다. 제가 아니라 그림이 스스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 작품과 예술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함께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동반자들을 찾아, 표현이 더 넓게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을 말하다가 쓰러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배우, 화가에 이어 3권의 책을 펴낸 글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심지어 ‘민음사’에서 세 권의 책이 나왔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쓴 글이지 책을 쓰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리면서 한 생각들을 다 쏟아놓은 것이다. 사실 책을 쓸 생각이 없었다.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면서 별 생각을 하게 된다. 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결국 그림이 요구받는 질문들, 아주 단순한 것들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을 안 쓸 수 없었다. 그런데 책을 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이었다”
2026-07-12
‘기’억하고 싶은 순간, ‘증’명하고 싶은 마음 담아… 경기도박물관에 전합니다
조선학자 송준, 찌푸리거나 취한 얼굴 그려져
허전 초상 진열장 앞 눈물훔친 고령의 기증자
‘조복’ 조사·연구 위해 무덤 열게된 이야기도
경기도박물관의 기증의 역사는 1986년 경기도향토사료관 시절부터 40년간 꾸준히 이어졌다. 박물관은 기본적으로 유물의 조사와 연구, 전시와 교육 등 여러 역할을 하지만 이 바탕에는 유물 기증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약 4만점의 유물 가운데 절반 정도가 기증된 것이니 말이다.
특히 기증된 유물은 구입하거나 발굴한 유물에 비해 만들어 간직하고 보관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사연이 생기게 된다. 경기도박물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준비한 기증특별전 ‘혼자 보긴 아까워서’는 이러한 기증 유물이 박물관으로 와서 전시되기까지 이와 관련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400건의 유물로 소개한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선조들이 남기고 싶었던 선명했던 순간을 살펴보는 ‘남긴 사람들’과 보관해온 유물과 생활용품을 박물관에 ‘기증한 사람들’, 그런 유물들을 조사·연구·보존하며 그 가치를 전시와 교육으로 알리는 ‘박물관 사람들’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송준 초상’은 이번 전시의 대표 전시품으로 처음 출품돼 의미를 더한다. 조선 중기 관리이자 학자인 송준의 초상화 밑그림 세 점은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1623년 송준의 평소 모습을 담은 초상을 그린 뒤 다른 자손들이 요청해 두 점의 초상화가 더 그려졌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하나는 화가 난 듯 인상이 찌푸려져 있고, 또 하나는 술에 취한 얼굴로 홍조를 띠고 옷 색깔에도 붉은색이 드리워져 있다. 어쩌면 숨기고 싶었을 두 모습을 함께 초상으로 남긴 데에는 자손들이 그의 다양한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했던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한다.
이외에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세상 사람들에게 본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남겨놓은 이의현의 지석,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가 신하 김상용에게 직접 써준 글씨를 새긴 ‘청풍계’ 현판 등 글과 그림, 조각 등으로 그 순간을 새겨서 남기고자 했던 선조들의 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한 기증자들은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의 시기 등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소중히 간직해왔던 유물을 박물관에 내어놓은 사연들을 위주로 전시해 둔 두 번째 섹션에서 보이는 보물 ‘허전 초상’은 허전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산청에 세운 이택당 물산영당에 보관돼 있었다. 박물관은 이 사당을 평생 관리해 온 분과 꾸준히 접촉했고, 2008년 초상을 기증받게 됐다. 고령의 기증자는 이후 먼 길을 찾아와 진열장 속 초상을 다시 만난 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전시장 중앙을 둘러보면 방이 하나 만들어져 있는데,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유물의 다양성을 보여주듯 근대 어느 시점의 유물들로만 방을 꾸며놓아 눈길을 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박물관 사람들의 활동도 눈여겨보면 좋을 듯하다. 지난 2016년 경기도박물관 연구원들이 묘지석을 보존 처리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하던 중에 안동권씨 충숙공파 권우의 무덤을 옮길 당시 촬영한 사진을 발견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조선시대 관리가 입었던 최고 예복인 ‘조복’. 완전한 형태였던 조복을 찾기 위해 박물관이 종중을 설득했고, 이에 종중은 새로 만든 무덤을 다시 열어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조복과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작된 폐슬 및 후수의 재현품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그동안 경기도박물관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유물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한 전시는 기증 유물과 함께한 사람들의 ‘혼자 보긴 아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2026-07-06
7~8월 금요일마다 재즈 축제
스윙부터 탱고·국악까지 다채로운 무대
인천시 지원으로 무료 진행
7월 11일 ‘토마스 플로린’ 내한 공연도
무더운 여름밤, 인천의 재즈 성지 ‘버텀라인’에서 낭만적인 ‘불금’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인천 제물포구 신포동에 있는 재즈 클럽 ‘버텀라인’이 7월과 8월 금요일 밤마다 특별한 재즈 공연을 마련하고 인천 시민들을 기다립니다.
이번 무료 공연에는 ‘2026 버텀라인 뮤직 웨이브’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인천시의 ‘시민문화예술공간 운영지원 사업’으로 기획된 공연인데요. “소규모 문화예술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생활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해 시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고, 여가와 휴식이 공존하는 지역 문화 거점을 조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라고 인천시는 설명합니다.
설명이 조금 어려운가요? 허정선 버텀라인 대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예전만큼 손님들이 못 오고 계십니다. 그래서 라이브 클럽도 힘듭니다. 이번 무료 공연으로 예전처럼 자리를 꽉꽉 채워주셨으면 좋겠어요. 다 같이 즐겁게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버텀라인의 이번 불금 축제는 스윙과 보사노바부터 탭댄스, 탱고, 전통 장단까지 스펙트럼을 크게 넓혔습니다.
7월 3일 ‘재키킴 콰르텟’은 낭만적인 ‘스윙’과 ‘보사노바’를 선보이며, 7월 10일에는 탭댄스와 퓨전 재즈가 결합한 ‘Park Wu & Windows Band’가 무대에 오릅니다. 이어 17일에는 흥미진진한 음악사의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정태호 콰르텟’의 공연이, 24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탱고 재즈 밴드 ‘라벤타나’가 버텀라인의 금요일 밤을 뜨겁게 달굴 예정입니다.
8월에도 ‘불금’은 이어집니다. 8월 7일 전통 장단과 재즈의 조화를 꾀하는 ‘장끼전’의 무대를 시작으로, 14일에는 ‘자유로운’ 재즈의 본질을 탐구하는 ‘Moon Stone Band’가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21일에는 레트로 버라이어티 쇼를 표방하는 ‘딴따라 쑈박스’가, 마지막으로 28일에는 ‘ENIGMATA’가 한여름 밤 ‘불금’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재즈와 클럽 공연의 대중화, 그리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염두에 둔 무대입니다. 시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었으니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예약은 반드시 해야합니다.
이전처럼 입장료가 있는 토요일 기획 공연도 계속 이어집니다.
7월 11일에는 스위스 제네바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토마스 플로린(Thomas Florin)’의 내한 공연이 열립니다. 즉흥 연주와 미니멀리즘이 결합한 독보적인 솔로 피아노 공연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 밖에도 두 달간 전재욱 콰르텟, SilkywarmS, 노민수 콰르텟, 이현재 퀸텟, 최해든 오르간 트리오, Jazz Libre, 구제창 트리오, 김영직 콰르텟 등 국내외 정상급 연주자들이 각기 다른 색깔과 깊이를 지닌 재즈의 진수를 차례로 선보입니다.
이쯤되면 버텀라인의 여름에 주목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2026-07-03
책을 좋아해 온 시간이 쌓여 만든 책방
인문고전부터 독립출판까지 선택 확장
글귀 번역·발췌한 미니 키링북 선보여
책방 앞에 빨간 차 한 대가 자리하고 있다. ‘365북스’의 최성욱 책방지기와 세계여행을 함께했던 든든한 친구이다. 책방지기는 이 빨간 차와 함께 연고도 없었던 용인의 시골 마을에 정착하게 됐다. 생소하고 낯선 시간들이 흐르면서 마을 형님들과 정을 쌓아갔고, 그들의 전폭적인 도움과 책방지기 부부의 손길을 거쳐 365북스가 탄생하게 됐다.
운명처럼 하늘에서 책방이 뚝 하고 떨어진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랜 시간 책을 좋아하고 읽어왔던 시간이 차곡히 쌓여와 얻게 된 기회였다. 책방지기는 10년간 작가들의 생일을 쭉 정리해왔다.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이 작가들의 생일로 채워졌고, 그들의 책이 선사하는 시간들이 되었다.
책방의 성격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기필코 책을 읽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는 ‘너만을 위해 탄생한 책’이자 ‘같은 날에 태어난 작가의 특별한 응원’으로 연결됐다. 365일 매일 다른 탄생화가 있는 것처럼 그날이 생일인 작가의 책과 연결시키며 ‘나를 만나는 특별한 여행’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과연 내 생일에는 어떤 작가가 태어났고, 그 작가는 어떤 책을 썼을까.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처럼 365북스에서 만든 생일북의 포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렇다면 365북스의 책들은 어떻게 골라질까. 최성욱 책방지기는 “태어난 지 100년이 지난 작가들의 인문 고전을 주로 다뤘는데, 지난해부터는 독립 출판하신 작가들도 적극적으로 큐레이션을 하고 있다”며 “제 마음을 가장 울리는 지점은 보편타당한 인간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책을 대하고 있는지는 그 작가의 글을 여러개 읽어보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에 관해서는 엄격한 기준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방을 열고 나서는 뒤틀린 활자도, 파본 조차도 귀해서 한 번도 받은 책을 반품한 적이 없었다”며 “저만의 기준에서 벗어나 다양한 작가들을 품고 소개하고 응원할 수 있는 존중하는 마음들이 생겼다는 게 달라진 풍경”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일력과 컬러링북 등을 만들어 냈던 365북스는 이번에 ‘365탄생화 미니 키링북’을 새롭게 준비했다. 키링으로 달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책에 816페이지를 꾹꾹 눌러담아 366종의 탄생화와 그날이 생일인 작가의 글귀를 책방지기가 직접 번역하고 발췌해 실었다. 책방지기는 이번 키링북을 두고 365북스 세계관의 완성이라고 표현했다.
최성욱 책방지기는 “독서클럽이나 작가의 북토크도 활발하게 했었지만, 최근에는 생일북의 수출과 같은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며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 저도 궁금하다”고 웃어 보였다.
[365북스가 추천하는 책]
철학으로 본 개인의 역사
나 다움을 성찰하는 시간
■ 개인의 철학┃뤼디거 자프란스키 지음. 청미 펴냄. 508쪽.
개인의 감정과 취향을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 세상에서 오히려 ‘나 다움’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책은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실존철학까지 ‘개인’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왔는지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추적한다. 몽테뉴, 니체, 사르트르, 루소 등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예술가들의 철학을 통해 나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 속한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고, 내가 어떤 방법으로 나를 만나야 하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2026-07-02
‘낯설게 하기’ 생각의 근육 훈련 방식 유도
공간별 사물 분류, 일상·사무·공공 재해석
■ 일상 질문 사전┃전성원 지음. 유유 펴냄. 520쪽. 2만2천원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이 이번에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100가지 사물에 대한 공부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마치 공기처럼 늘 당연하게 존재하는 ‘낯익은 사물’을 공부하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낯선 눈으로 바라보기’다.
저자는 전작인 벽돌책 ‘하루 교양 공부’(유유 刊, 2022년)로 매일매일 ‘가벼운 읽기’와 ‘꼼꼼한 읽기’를 병행하는 독서방법을 통해 교양을 쌓는 공부에 나서자고 제안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일상에서 만나는 구체적인 물건들로 눈을 돌렸다.
책은 정보를 알려주는 ‘사전’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잃어버린 질문’을 되찾아주고 ‘호기심’을 선물해주는 인문·교양서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누군가 ‘자각하지 못하는 삶은 살아있는 인생이 아니다’라고 했던가. 저자는 ‘낯설게 하기’ 방식으로 무뎌진 감각을 깨워, 사물을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들며, 우리가 비로소 그 본질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돕는다.
100가지 사물은 크게 3가지 질문으로 나눠 분류된다. 1부의 질문은 ‘친밀한 공간에서 질문하기:내가 매일 쓰는 물건 속엔 어떤 이야기가 숨겨 있을까?’이다. 스마트폰, 신용카드,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등 ‘일상 소지품’과 스팸, 맥주캔, 냉장고와 에어컨 등 ‘식품과 가전’, 그리고 니플패치, 단추, 화투 등 ‘서랍 속’ 물건 등에 대한 공부에 나선다.
2부의 질문은 ‘사무 공간에서 질문하기:당신의 일을 도와주는 물건 뒤엔 어떤 과정이 담겨 있을까?’이다. 사무공간을 ‘책상 위’ ‘사무실’ ‘휴게공간’으로 구분해 연필, 커터칼, 출퇴근기록기, A4용지, 모카포트, 커피믹스 등을 탐구해본다. 3부는 공공의 공간에서 ‘우리가 함께 쓰는 물건 옆엔 어떤 사회의 모습이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며 ‘놀이공간’ ‘도시 속’ ‘의료시설’ 등에서 만날 수 있는 회전목마, 솜사탕, 안전모, 컨테이너, 내시경, 피임약, 구강청결제 등을 알아본다.
이 책의 기획 단계에서 물망에 올랐던 사물은 1천500여개 이상이었다고 한다. 초고 단계에서 473개를 추렸고, 최종적으로 100개를 선택해 마무리됐다.
어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일상을 다르게 보고, 뒤집어 생각하는 법’을 일깨워준다. 호기심이 많은 어린아이들은 늘 자연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태양이 어떻게 하루 한 차례 뜨고 지는지, 하늘에서 비는 왜 내리는지, 바람은 왜 부는지 말이다. 어른이 되어 자연이 익숙해지고 그저 그런 일상이 되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게 된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 또한 마찬가지가 된다.
전 편집장은 “방대한 지식을 정리하고 제시하는 방식으로 사물을 다룬 책은 많다”면서 “인공지능과 검색의 시대에 이 책은 독자가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생각의 근육’을 키우도록 유도한다는 점이 이 책의 다른 책과의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2026-07-02
103개 갤러리 집결 道 대표 아트페어 자리매김
한국화랑협회-수원컨벤션센터 공동 주최
컬렉터·관람객 등 전국 예술 애호가 발길
신규수요 유입·안정적 판매 ‘성장 가능성’
경기도 대표 아트페어로 자리매김 한 ‘2026 화랑미술제 in 수원’이 지역 미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28일 막을 내렸다. 한국화랑협회와 수원컨벤션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행사는 전국의 103개 주요 갤러리가 참여하며 지역 주민과 전국 예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았다.
올해는 1층에서 모든 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게 공간을 구성했다. 이에 관람객들은 동선의 편의성과 작품 감상에 있어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다. 3년째 이어진 행사는 그만큼 재방문 한 컬렉터와 관람객들이 늘어났으며, 신규 구매층의 유입까지 이어지며 경기권 미술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폭넓게 조망한 전시는 신규 컬렉터들의 취향을 겨냥한 이머징 작가들부터 탄탄한 인지도를 구축한 주요 작가들, 중견 및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채롭게 준비됐다. 특히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와 소품, 작은 크기의 작품들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개막 첫날에 대형 작품이 판매된 학고재의 정수영과 회화 작품 7점이 판매된 린파인아트 갤러리의 공예나, 출품작 전량이 판매된 갤러리소헌&소헌컨템포러리의 문준호, 신작 3점이 판매된 선화랑의 송지연 등을 포함해 동시대적 감각과 실험적 시도를 담아낸 작가들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드러났다.
또 이화익갤러리의 차영석, 금산갤러리의 권창남, 갤러리박영의 김영진 등 탄탄한 인지도를 지닌 작가들의 주요 작품들이 안정적인 판매를 기록했으며, 신미화랑의 권옥연, 동승갤러리의 김구림 등 거장들의 작품도 행사 기간 내내 꾸준한 관심을 모았다.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은 “화랑미술제가 전통이 있고 수준있는 미술제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보러 오게 됐다”며 “서울까지 가지 않고도 수원에서 이러한 아트페어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한 갤러리 관계자 역시 “지역에서도 이러한 행사를 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화랑미술제는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들로 꾸려져 전체적인 퀄리티가 훌륭하기 때문에 경기도민들에게는 좋은 작품을 만날 기회가 됐을 것”이라며 “아무래도 작품이 친숙해지면 구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성을 갖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수원문화재단 특별전 ‘수문장’은 수원 지역 예술가 24명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파도(Wave)’를 주제로 한 전시는 잔잔한 물결부터 빛을 머금은 윤슬, 온몸으로 밀려오는 거대한 해일에 이르기까지 파도의 다양한 움직임과 에너지를 담아내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한국화랑협회는 “지역 문화 저변 확대와 비수도권의 미술 소비자 및 신규 컬렉터 발굴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행사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서울에 집중된 미술 문화의 저변을 확장하고 지역에서 공신력 있는 아트페어로서 기반을 굳건히 다져가고 있다”고 밝혔다.
2026-06-29
‘늦깎이 시인’ 김정혜 3월 등단
전국 발로 누비며 20년간 700편 집필
현장의 생생함·오감 고스란히 묻어나
돌아가신 어머니 절절한 그리움 담겨
■ 걸으며 시 쓰는 여자┃김정혜 지음. 바른북스 펴냄. 157쪽. 1만3천원
제주 올레길과 서울 둘레길, 한강·낙동강 자전거길과 100대 명산을 걸어서 완주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경기옛길도 완보했다. 안 가본 산과 도보길이 없다시피 할만큼 전국을 두 발로 누볐다. 그렇게 걸으면서 글을 썼다.
가정주부였던 김정혜(69) 시인은 올해 3월 ‘한글문학’ 봄·여름호를 통해 정식 등단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걸으며 시 쓰는 여자’라는 제목의 첫 시집을 발표했다. 지난 20여년 간 남몰래 써온 700여편의 작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시인의 글쓰기는 웹에 도보여행 후기를 쓰면서 시작됐다. 방가지똥, 칼잎용담, 벌개미취, 코딱지나물꽃 등 다른 이들이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들꽃들을 눈에 담고 야생화 카페 등을 쫓아다니며 꽃에 몰두한 글을 썼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산행기도 차곡차곡 쌓아갔다.
김 시인은 몇 달에 걸친 백두대간 종주 도중 낙상사고로 다리를 다쳤고, 회복 후부터 전국의 둘레길로 방향을 돌렸다. 걷는다는 건 ‘잘 살고있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하루 5만 보를 돌파한 것도 부지기수고, 서울 시내는 한강 너머든 어디든 걸어서만 다녔다. 그러면서 꾸준히 시를 써 인터넷카페와 개인 블로그에 공개했다. 주위에서 아마추어 글쓰기가 아니라며 등단을 권유했다.
작품에는 현장에 직접 있어야만 포착할 수 있는 생생함, 작가가 고스란히 느꼈을 오감이 묻어있다. 꽃에게 열매에게, 작은 새와 나무에게 건넨 말들이 가볍지 않으면서도 간결하다.
시집의 마지막 섹션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마무리한다. 마음따라 자연따라 걸은 듯하지만, 모든 걸음이 그 마지막 사모곡에 연결돼 있음을 짐작케 한다.
‘김정혜의 시는 다리로 시작해 입을 거쳐 눈을 통해 완성된다’라는 출판사 서평처럼, 책을 읽고나면 따뜻한 인생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 든다. 70세 목전에 늦게 핀 꽃이라 오래 지속될 향기다.
2026-06-25